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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못이 없다는 위로, 영화 '브로커' 후기

김원생 2023. 3. 2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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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줘서 고마워"

언젠가 학창시절 생일에 친구로부터 받은 메시지였다. 당시 한참을 곱씹으며 생일축하로 이보다 좋은 말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으로써 인정받았다고 느껴져 충만해지는 말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한번쯤 ‘왜 태어나게됐을까’ ‘굳이 태어나야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된다. 보통 고통을 수반하지만 대부분 그를 잊고 현생을 살아간다.

영화 브로커에서 던지는 물음이 많다. 특히 아래 대목에서 질문 한가지가 들렸다. 우리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쁘다’고 판단하는 게 얼마나 가벼운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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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기만 한, 언젠가 들어봤을 법한 헤드라인이다.극중 배두나 역의 형사도 후배 형사에게 묻는다.
“넌 아이를 버리는 엄마가 이해가 되니?”

직업정신이 투철하고 ‘쿨함’을 풍기는 이 형사는 알고보니 ‘진짜 사랑’의 소유자였다. 집에 들어가지 못해 차안에서 통화중인 형사, 건너편 남편의 음성은 들리지 않지만 그 다정함이 느껴진다. 그녀가 범죄의 반대편에 설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존재들 덕분일지도.


브로커는 소탈한 영화였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와 장면 하나하나가 편안했다. 존재의 불안감, 죄책감, 편견, 안정감과 안도감. 우리 모두가 느껴본 감각들을 하나씩 되짚으며 위로를 건넸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쓴 “당신이 옳다”라는 책과도 맞닿아 있었다. ‘당신은 틀렸다’를 강제주입받던 현대인에게 존재를 인정해주는 책. 나에게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건네게 되는 책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상상되는 평가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것이 대부분. 들리지 않더라도 머릿속 목소리는 차갑고 냉정하다.

우리도 분명 타인을 평가해본 경험이 있기에 그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지않는다. 또 재밌는 사실은 죄책감은 오히려 반발심의 형태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사실 밖으로 내비치는 주장들은 마음이 송곳으로 찔려 터져나오는 방어본능일지도.

극중 아이유(이지은)가 맡은 ’소영‘은 따가운 시선을 느낄때 “왜 아빠에게는 무책임하다고 말하지 않아요?”라며 소리치지만 안도감을 느낀 상대에게는 “그래도 내가 아이를 버렸다는 건 변함없어”라며 눈물을 보인다. 
’당신은 그럴수밖에 없었어‘라 말해주는 사람 앞에서는 가시돋힌 외부 모습을 무너뜨리고 내면의 가시들을 제거할 수 있게 되는 것. 공감이라는 기술은 무엇보다 쉽게 인간을 구해내기도 한다.

브로커는 자연스러운 대사와 유머로 다가오는 친절한 영화였다. 감동적이라는 표현은 생략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영화‘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데, 슬픔의 감정에 청중을 밀어붙여 결국 눈물을 흘리는게 목표인 ‘신파 영화’에도 자주 붙여지는 칭호이기 때문이다. 

브로커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각 인물들의 속마음을 이해시키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두가 경험해봤을 감정적인 고통을 섬세하게 되짚는 영화랄까. 타인을 쉽사리 판단하기보다 어쩔수없는 상황의 희생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여유로운 마음. 영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가시돋힌 세상을 구원할 해결책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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